법이 있어도 적용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
관용. 이해. 용서. 우리는 분명 문명 사회를 살고 있습니다. (크라스갈드님의 블로그에서 트랙백)


웬만하면 혼자서만 분을 삭히고 넘어가는데, 이건 꼭 흔적을 남겨야겠다 싶었다.




살인, 강도, 폭행 이런 것들은 '법대로' 처벌하면서 어째서 성범죄에는 법관의 재량으로 처벌하는 걸까.
(물론 법관의 재량이라는 것도 법에 규정되어 있긴 하지만 그 사항은 논외로 하고)
형법을 보면 사람의 생명과 신체에 관한 죄로 살인과 폭행, 학대 같은 것이 있고
강간과 추행의 죄는 사람의 신체가 아니라 자유에 관한 죄로 포함된다.
성적 자기결정권이 주된 법익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강간으로 인해 침해되는 것이 과연 성적 자기결정권, 혹은 의사결정의 자유 - 자기가 하고싶지 않을 때 하도록 강제되는 단순히 개인의 자유에 관한 문제인지에 대해서는, 상당히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강간이란 어떤 의미에서는 피해자의 인격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다.
상대방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성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에 의해 성범죄의 피해자는 몇 번이고 자기자신을 부정당하게 된다.
피해자는 성적 자유를 침범당함에 그치지 않고 정신적으로, 사회적으로 살해당한다.
사람들이 말로, 눈길로 그를 갈기갈기 찢어 죽인다. 물리적인 성폭력행위가 끝난 후에도 피해자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그 범죄로 인하여 고통받게 되는 것이다.
(폭행으로 인해 반신불수가 되어 제대로 삶을 영위하지 못하고 그저 생명만 이어가는 중상해죄의 피해자를 예로 떠올려보라. 중상해죄는 육체적 고통과 후유증을 남기지만 강간죄는 육체적 후유증과 더불어 - 강간치상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심한 성폭력 피해자는 임신을 할 수 없는 몸이 되거나, 치유불가능한 상처가 남기도 한다 - 아주 강한 정신적 고통을 남기는 것이다. 그 고통은 본인의 내면에서 곰씹어질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 의해서 몇 번이고 억지로 끌어내져서 피를 흘리게 하는 종류이다.)

가해자부모들의 인터뷰

이 인터뷰를 보고 난 당연히 뒷목 잡고 쓰러졌지만, 대한민국에는 분명 그럴지도 모른다고 수긍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중학생 여자애가 술을 마시다가 강간당했다는 뉴스를 보고 '강간한 놈이 죽일 놈'이라고 하기 보다는 '여자애가 그런 데서 술이나 마시니까 당하는거지'하고 말하는 사람들. 우리가 인터넷에서 접하는 악플러만 그런 생각을 할 것 같은가? 당장 주위 동기나 어른들을 붙잡고 물어보라. 여자에게는 아무런 잘못도 없고 오로지 남자만 쳐죽일놈이라는 대답만 듣게 된다면 당신은 매우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성폭행보다 잔인한 학교, 사회 - 엠파스 뉴스-

대한민국 사회는 왜 이렇게 성범죄자에게 관대한걸까?
아니 성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나오는 결과를 보며 사람들은 모두 솜방망이 판결이라 한입을 모아 얘기하는데, 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고 성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피해자를 몰아세우는건지, 진심으로 궁금하다.
왜 그런가 나름의 이유를 생각해보았는데, 진실은 알 수 없는 일이다.
1) 성범죄자에게 너무 관대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이거나 모두 여성이다.
2) 사람들은 앞에서는 성범죄자에게 좀 더 큰 벌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3) 성범죄자를 처벌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어떤 사회의 목소리에도 굽히지 않고 자신의 관대한 주장을 관철한다.

나는 3번이 가장 중대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법률이 시민의 법감정에 어긋나서는 안되는 일이지만, 시민의 법감정에 의해서 법을 제정하거나 적용되어서는 안된다. (형)법이란 것은 옳고 그름을 따져 잘못을 고쳐야하는 것인데, 범죄행위는 시대에 따라 그 종류나 수위가 조금씩 달라진다고 해도 법 자체가 보호해야 할 인간의 절대적 법익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법은 중심을 잡고 정의롭게 존재해야 하며 판사가 시민의, 혹은 자기 자신의 법감정에 휩쓸려서 재량으로 결정하는 일은 있어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아무리 사람들이 강간피해자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본다 해도 법은 법 자체로 우뚝 서서, 공정하게 가해자를 심판하고 또 그런 관행이 이어져 오면 사회의 법감정도 자연히 변화되기 마련인데 오늘날 성범죄에 관련된 판결은 전혀 그런 역할을 해주지 못하고 있다.
판결문을 보다 보면 '초범이므로 집행유예'라는 구절이 종종 나온다. 경범죄라면 몰라도, 막말로 누가 사람을 죽였다고 해도 '사람 처음 죽인 거니까 이번은 봐주자'고 할 수 있는 것인가.(살인과 강간은 그 침해법익의 중요도가 다르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위에 쓴 것처럼 개인적으로는 강간도 사회적,정신적 살인과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성범죄는 재발율이 참 높은 편이다. 실무가들은 그것을 몰라서 성범죄자를 '초범'이라는 이유로 아무런 제재 없이 사회에 풀어놓는 것인가? 그리고 재발 후에야 아차하고 적당히 형을 집행한다면, 대한민국은 누구나 한번쯤은 성범죄를 저질러도 괜찮은 나라로 변모하고 말 것이다.
이번 밀양집단성폭행사건 판결문에서도 '우발적 충동'이라는 구절은, 판사의 저조한 어휘능력을 알 수 있게 해준다.(설마 판사씩이나 되는 사람이 사고능력이 떨어지지는 않을거라는 가정 하에, 아마 '우발적'이라는 단어의 뜻을 잘 몰랐을거라고 본다)
1년 동안 집단으로, 한 명의 가해자를 상습적으로 강간해왔다면 그건 이미 '우발적' '충동'이 아니다. 이것은 오로지 피해자의 처벌을 면해주기 위해 갖다붙인 변명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충동'이라는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성범죄자들이나 그들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남자의 성적 '충동'은 여자의 그것과는 달리 제어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여자는 성적 욕구가 없나? 사회적으로 여자의 성욕이 표현되는 것이 일상적이지 않을 뿐 여성에게도 남성과 다를 바 없는 성적 욕구가 존재한다ㅡ고 얘기하면 다시 그들은 남성과 여성의 성적 역할에 있어서의 능동성과 수동성을 들어 반박한다. 모두 궤변이다.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은 '본인이 그러고 싶지 않다'는 것의 훌륭한 변명일 뿐, 가능성과 소망을 아주 멋지게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본인은 남자가 아니므로 일부 남자들이 이 의견에 대해 반박한다면 증거를 들 수는 없다. 그러나 여자가 아니고 '인간'이라는 입장에서 바라보았을 때 자기의 욕구 하나도 조절 못하는 건 짐승이지 인간이 아니다. 사람이 자기 몸을 왜 통제 못하는가? 
식욕, 성욕, 수면욕은 예로부터 인간의 3대 욕구로 불리어왔지만 그 욕구의 성취 방법이 단 한 가지-음식물 섭취와 자는 것-밖에 없는 식욕, 수면욕과는 달리 성욕에는 정말 다양한 해소방법이 있지 않은가. 성욕을 해소하는 방법 중 한 가지로 성교를 맺고 싶다면 상대방에게 동의를 구해야한다는 것이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한) 인간사회의 예의이고 상식이며, 인간과 인간과의 소통이라는 간단하고 쉬운 상식을 모르는 개체를 과연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으로 그 여중생은 왜 1년동안 그 어디에도 신고하지 않고 계속 당하고 있었는가에 대하여 소소한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이 있다면 협박과 폭행을 장기간 당하는 사람의 심리상태에 대해 아주 열심히 생각해보길 바란다. 초딩이나 저능아가 아니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본인의 경우 아주 소소한 폭력과 욕설을 지속적으로 들어온 결과 그 사람이 옆에만 와도 온 몸이 덜덜 떨리며 숨이 막혀서 말도 제대로 못한 적이 있다. 이 경험은 형법상 '매 맞는 아내 증후군'과 기타 많은 범죄 피해자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었다.)





>.................블로그에 이런 글 쓰면 페미니스트인가효?'ㅁ'
by charon | 2007/06/18 17:02 | ~중얼중얼~ | 트랙백(1) | 덧글(7)
트랙백 주소 : http://sentilaby.egloos.com/tb/3517618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Tracked from 아트걸의 횡설공간 at 2007/06/21 03:01

제목 : 딸 키우는 엄마로서 판사님들에게 부탁 하나.
관련글1: 법이 있어도 적용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관련글2: 구속영장 기각과 판사의 책임인간이 인간의 위에 서서 '판결'을 내리는 일이 상당히 무겁다는 것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런 부담 때문에 웬만한 일(?)은 너그러이 봐주고 싶을지 모른다. 법전에도 "~이하의 어쩌구에 처한다" 일색이니깐, 그 말을 빌미로 재량권을 행사하는 것이겠지?하지만 적어도 인간이 아닌 괴수가 한 일에 대해서는 아량을 잠시 접어두셨으면 좋겠다. 우리나라도 다른 ......more

Commented by 에린지움 at 2007/06/18 17:15
아니요 페미 아닙니다.
지극히 당연한 말씀을 하신 것 뿐입니다.
Commented by 에인샤르 at 2007/06/18 17:30
당연한 말이지만...
남자가 성적 충동을 제어하기 힘든 생물이라는 변명은...
수많은 평범한 남자를 잠재적 성범죄자로 만드는 개소리입니다...
그거 참으라고 인간에게 이성을 던져준 겁니다
마스터베이션이라는 단어도 괜히 존재하는게 아니죠...
Commented by 수롤 at 2007/06/18 18:21
조랭 짜증이다.
인간같지 않은 새끼들
조낸 학습시키고 싶다 앉혀놓고
님하들 개념은 어디로?
Commented by JoysTiq at 2007/06/18 23:52
페미니스트이면 어떻습니까?
페미니즘도 결국 인권운동의 연장일 뿐입니다.
Commented by 북극찐빵 at 2007/06/19 15:41
저도 그....41명 대부분을, 초범이며 우발적 충동으로 벌인 일이었고 단순 가담이었으므로 귀가조치 시켰다는 대목에는 머리에서 김이 오르더군요. 판사의 정신세계부터가 의심스러웠습니다;;
Commented by charon at 2007/06/19 17:30
에린지움/ 요즘 이글루스가 좀.. 너무 남녀대립구도로 흘러가는 것 같아서 그냥 써봤답니다. 뭔가 정신이 없는 느낌ㅠㅠ
에인샤르/ 그쵸, 본능대로 살고 자기 행동을 스스로 조절 못하면 그게 인간인가요!!
수롤/ 근데 성범죄자는 인간이 아니라도 쳐도 판결을 내리는 법관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어요.
JoysTiq/ 감사합니다. 딱히 페미니스트라는 인간 유형은 없고, 사람 사고방식 중에 그런 부분이 있는거라고 생각하는데 요즘엔 좀 다른 의미로 쓰이는 것 같더군요.
북극찐빵/ 저도 꼭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 판사에게, 왜 그랬는지 정말 궁금해서요.
Commented by 아트걸 at 2007/06/21 02:02
이오공감에 오른 글 보고 저도 관련글을 쓰려 했는데, 님 글이 더 마음에 들어서 트랙백 합니다. ^^;

:         :

:

비공개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