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커스 주삭, <책도둑>

그 광경이 복도에 있던 소녀에게 육박해왔다.

◈그림으로 그려진 이미지◈

아코디언을 들고 있는 로자.
어둠을 비추는 달빛.
152센티미터X악기X정적.



 리젤은 가만히 지켜보았다.
 몇 분이 똑똑 떨어지며 지나갔다. 음을 듣고 싶은 책도둑의 마음 때문에 몸이 지칠 정도였지만, 음은 나오지 않았다. 건반은 움직이지 않았다. 주름상자는 숨을 쉬지 않았다. 커튼에 긴 머리카락 같은 달빛이 있을 뿐이었고, 로자가 있을 뿐이었다.
 아코디언은 그대로 로자의 가슴에 묶여 있었다. 로자가 고개를 숙이자, 아코디언은 무릎까지 가라앉았다. 리젤은 지켜보았다. 리젤은 다음 며칠 동안 엄마가 몸에 아코디언이라는 낙인을 찍고 돌아다닐 것임을 알았다.



0. 글을 잘 쓴다는 게 이런거군요.
정정.
제가 뭐 대단한 눈을 가진 것도 아니니 이 말은 곧 제 취향에 맞는 문장을 쓰는 사람이라는 뜻이 되겠네요. 문장 하나하나가 가슴을 후벼파더라고요.. 소제목도 그렇고.
아, 루디, 루디. 어젯밤엔 펑펑 울었습니다.


1. 보면서 생각해봤는데 세계대전, 히틀러=퓌러, 독일인, 유대인, 이런 것들이 나오는 책은 잘 읽으면서(아니 오히려 즐겨 읽는 편입니다. 읽을 때마다 울긴 하지만) 우리나라 소설은 곧죽어도 못 읽는 이유가 말이죠, 히말라야 산맥 어딘가에서 뱅골호랑이의 유령이 출몰한다는 내용의 공포물과 한국 지하철에서 원한을 품은 귀신이 사람들을 저주하는 내용의 공포물을 봤을 때 느끼는 두려움의 차이에 있는 것 같습니다.
대체로 저에게 책은 저 멀리 있는 어딘가의 장소이고, 현실과 완벽한 단절(즉, 도피)을 위한 행위가 독서거든요. 책에 나오는 뮌헨 거리는 내가 갔던 그 거리와는 다른 곳, 책 속의 바다는 어디에나 있지만 그 누구도 가보지 못한 그런 곳입니다. 그러니까 오늘저녁 지하철 옆자리에 앉아있는 누군가가 겪었을 법한 일이 쓰인 책 같은 건 읽고 싶지 않아요.
전 휴먼 다큐멘터리, 인간극장 이런 프로그램 제일 싫어합니다. 못되처먹었다는 소리도 듣긴 하는데, 음, 현실은 내 삶으로 충분해요.


2. 독일어랑 섞여 나와서 좋기도 하고 좀 우스웠습니다.
그게, 보통 소설에 외국어 발음을 한국어로 기재하는게 일반적이던가요?
페어슈테스트 두? 마헤 아우프! 같은거요.
아니 그 전에 이건 영문소설인데 왜 굳이 독일어를 집어넣은건지.. 결국 같은 말의 반복인데요. 비스 모르겐, 내일 또 봐요. 
여긴 독일이구나,하는 실감이 훨씬 나긴 했지만요.


3. 누가, 언제, 어떻게 죽을지 다 알면서도 결국 울게 됩니다.
이 책은 초장부터 자기가 스포일러 다 하고 들어감.


4. 작중에서 로자가, 그리고 루디와 리젤이 서로를 부르던 자우멘슈! 자우케를!하는 욕설..이랄까 애칭 말입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돼지새끼' '돼지 같은 놈' 정도인데 생각해보면, 음............
루디는 그럼 12월의 강에 뛰어들어 차갑게 식은 입술로 웃으며 "돼지쐉년아 뽀뽀 한 번 어때?" 하고 말했단 말입니까..........orzorz





by charon | 2009/07/24 16:20 | ~불순한독서생활~ | 트랙백(1)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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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책읽는 엄마의 보석창고 at 2009/07/24 16:33

제목 : 책도둑. 2 / 마커스 주삭.
.포스팅과 함께 합니다..^^ 마지막으로 도끼를 휘두르던 사람은 실패하자 소녀에게 소리쳤다. "말을 흔드는 소녀야! 이제 내려와라! 이 나무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구나!" 남자의 목소리를 간신히 알아들을 수 있었던 소녀는 소곤거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고맙지만 됐어요." 소녀는 그 말을 가지들 밑으로 건네주었다. 유대인 '막스'가 리젤에게 준 마지막 선물, '말을 흔드는 사람' 본문 中 ......more

Commented by 김정수 at 2009/07/24 16:33
ㅎㅎㅎㅎ 저도 욕을 대입하면서 어처구니가 없어했는데..
적나라하게 표현을 하시니 웃음이 터집니다.
Commented by charon at 2009/07/25 15:46
처음엔 번역 좀 제대로하지 독일어를 그대로 갖다쓰나 불만스러웠는데.. 차라리 낫더라고요. 자우멘슈!하면 욕이라는 느낌도 별로 안 들고 적당히 애칭으로 넘어갈법한데 번역했으면 감정이입 실패했을 것 같아요orz
Commented by reya at 2009/07/25 00:52
앗 그러고보니 이것도 재미있었지... 엄청 울었다. 그 똑똑 떨어지는 글투가 인상적이었어. 색깔 묘사하고. 왜 추천해 달라고 하면 생각이 안 나는 걸까;;
난 독일어 그렇게 쓰는 거 좋았는데ㅋ 음 발음의 어색함은 둘째치고, 번역 기술이라는 느낌이었어. 아마 원문으로 읽어도 비슷한 느낌 아닐까 싶더라.
같은 작가의 '메신저'도 검색하다 봤는데 평이 좋네ㅇㅅㅇ
Commented by charon at 2009/07/25 15:45
응응 문장 엄청 마음에 들더라. 동사나 수식어 사용이 내가 생각도 못한 조합을 이루고 있거나 해서 멋있었어.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지만;;
근데 이건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눈물이 줄줄 나온다기보다는 문장을 한 번 읽고 상황을 되씹는 과정에서 울컥,하는 느낌이었어. 덕분에 읽을 땐 글썽글썽하다가 다 읽고나서 엉엉 울었습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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